#4: 소피아의 선택
클로에는 소피아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파티장에서, 둘 다 와인을 들고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지나갔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그녀는 소피아를 알게 되었다. 208호. LSE 정치학과. 금발. 키가 크고 말랐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유난히 컸다. 너무 커서 가짜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너, 오늘 2층이야?”
“응. 210호.”
“나 208호. 마틴 경 와.”
“또?”
“응. 또. 그는 내가 제일 좋아.”
소피아는 웃었다. 그 웃음은 입가에만 맴돌았다.
클로에는 그녀를 몇 번 봤다. 복도에서, 계단에서, 때로는 3층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모습. 하지만 그녀는 소피아의 방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여기서는 묻지 않는 것이 규칙이었다.
하지만 소피아는 달랐다. 그녀는 말을 걸었다.
“너, 알렉스가 얼마나 빚졌어?”
“처음에는 8만 파운드.”
“지금은?”
“5만. 너는?”
“나? 모르겠어. 10만? 15만? 계산하는 걸 그만뒀어. 어차피 안 줄어드니까.”
소피아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여기서는 금연이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너, 여기서 나갈 생각 있어?”
“있지. 빚 다 갚으면.”
“빚은 절대 안 갚아져. 알렉스가 자꾸 새로운 걸 붙이니까. 화장품, 옷, 방값. 다 빚이야.”
“그래도 줄고 있잖아.”
“네가 그렇게 믿고 싶다면.”
소피아는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나는 포기했어. 여기서 나갈 수 없다는 걸 알아. 그래서 적어도 편하게 살려고 해.”
“편하게?”
“응. 약. 해봤어? 기분 좋아져. 모든 게 잊혀져.”
클로에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마. 그건 더 나빠져.”
“이미 나빠. 더 나빠질 게 뭐가 있겠어.”
소피아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작은 알약이 두 개.
“한 번만 해봐. 그러면 알게 될 거야.”
클로에는 그 손을 밀쳐냈다.
“안 해.”
“겁쟁이.”
소피아는 알약을 입에 넣고 삼켰다. 그녀의 눈이 순간적으로 흐려졌다.
“이게 훨씬 낫다. 너도 해봐.”
“소피아, 그만해.”
“걱정 마. 나는 아직 안 죽어. 죽을 때가 되면 알려줄게.”
그녀는 일어나 208호로 사라졌다.
며칠 후, 클로에는 복도에서 소피아와 마주쳤다.
소피아의 팔뚝에는 바늘 자국이 선명했다. 그녀는 더 말랐다. 눈 밑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너, 주사도 해?”
“응. 알렉스가 구해줬어. 비싼 거라서 빚에 추가됐지만. 그래도 좋아. 효과가 빨라.”
“소피아, 그건 네 몸을 망가뜨리는 거야.”
“이미 망가졌어. 내 몸, 내 영혼, 내 모든 게. 그런데 적어도 약은 아프지 않게 해줘. 여기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야.”
소피아는 그녀에게 다가와 작은 주사기를 보여주었다. 투명한 액체가 들어 있었다.
“이거 한 번만 해봐. 그러면 네가 왜 내가 이러는지 알게 될 거야.”
“아니.”
“고집 피우지 마. 너도 결국 이렇게 될 거야. 여기 있는 여자들은 다 그래. 먼저는 거부하다가, 나중에는 찾게 돼. 왜냐하면…”
소피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 고통을 참을 수 없으니까.”
그녀는 주사기를 클로에의 손에 쥐여주었다.
“생각해봐. 나는 절대 강요 안 해. 그냥…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거야.”
소피아는 208호로 돌아갔다. 클로에는 그녀의 손에 남은 주사기를 바라보았다.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그 액체를 버렸다. 그리고 주사기를 휴지에 싸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는 액체가 닿았던 감각이 남아 있었다. 차갑고, 끈적한.
그녀는 손을 여러 번 씻었다.
일주일 후, 소피아는 2층에서 쓰러졌다.
클로에는 복도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경호원들이 뛰어다녔고, 알렉스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클로에, 여기 와.”
알렉스의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208호로 달려갔다.
소피아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눈은 뒤집혀 있었다.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팔뚝에는 여러 개의 바늘 자국. 그중 하나는 피가 나고 있었다.
“앰뷸런스 불러야 해!”
“안 돼. 여기가 발각되면 우리 모두 끝이야.”
“그럼 소피아는 죽어!”
“내가 아는 의사가 있어. 그가 올 거야. 너는 여기서 기다려.”
알렉스는 자리를 떴다. 클로에는 소피아의 머리를 무릎 위에 얹었다.
“소피아, 나야. 클로에야. 정신 차려.”
소피아의 눈이 살짝 움직였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미안.”
“왜 미안한데?”
“네 손… 더럽혀서.”
“신경 쓰지 마. 제발 말하지 마. 의사가 올 거야. 너 죽지 않아.”
“죽는 게 나아.”
소피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여기서… 1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나는… 더 이상 못 하겠어…”
“할 수 있어. 나도 했잖아. 너도 할 수 있어.”
소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강해… 나는 약해… 처음부터… 약했어…”
그녀의 눈이 감겼다.
“소피아! 소피아!”
의사가 도착한 것은 30분 후였다. 그는 소피아에게 주사를 놓고, 그녀의 맥박을 확인했다.
“살았네. 하지만 다음에는 장담 못 해.”
그는 소피아를 3층으로 옮겼다. 클로에는 그녀의 방 앞에서 밤을 새웠다.
소피아가 깨어난 것은 이틀 후였다.
그녀의 얼굴은 더 창백해졌다. 그녀는 클로에를 보자 미약하게 웃었다.
“살아있네.”
“응. 살았어.”
“아쉽네.”
“그런 말 하지 마.”
소피아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차가웠다.
“클로에, 내가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
“뭔데?”
“2층 화장실, 세 번째 타일. 거기에 USB가 있어. 내가 모은 거야. 증거들. VIP 명단, CCTV 영상, 알렉스 통화 녹음.”
“그걸 왜 나한테…”
“너는 강해. 너는 여기서 살아남을 거야. 나는 못 하지만. 네가 이걸 밖에 전해줘.”
“네가 직접 전해. 나는 안 해. 너 나가서 직접 해.”
소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못 나가. 알렉스가 절대 안 놓아줘. 그리고 나는… 이미 너무 망가졌어. 나가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소피아…”
“제발. 이것만은 들어줘. 내가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거야.”
클로에는 침묵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하지만 너도 약속해. 죽지 마.”
소피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밤, 클로에는 2층 화장실에 들어가 세 번째 타일을 떼었다. 그 안에는 작은 USB 하나가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속옷 안에 숨겼다.
208호로 돌아왔을 때, 소피아는 없었다.
“소피아 어디 있어?”
경호원이 대답했다. “알렉스가 안전한 곳으로 보냈어.”
“어디로?”
“모르겠어. 그만 묻는 게 좋아.”
클로에는 208호 문 앞에 서 있었다. 방 안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는 3층으로 올라가 방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소피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안, 소피아. 나는 약속 못 지켜. 나도 여기서 못 나가.’
그녀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베개를 적셨다.
소피아가 사라진 지 일주일 후, 클로에는 210호에서 손님을 받고 있었다.
손님이 나간 후, 그녀는 샤워를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소피아, 나는 아직 살아있어. 너는? 너도 살아있기를 바래.’
그녀는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웠다.
휴대폰에 소피아의 마지막 문자가 남아 있었다.
“2층 샤워실, 세 번째 타일. 잊지 마. 나는 너를 믿어.”
클로에는 그 문자를 세 번 읽었다. 그리고 삭제했다.
‘미안, 소피아.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그녀는 눈을 감았다.
다음 날, 또 다른 밤이 왔다. 또 다른 손님. 또 다른 의식.
클로에는 일어나 드레스를 입고, 립스틱을 바르고, 210호로 내려갔다.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문이 열렸다.
손님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그녀는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입가에만 맴돌았다. 눈은 웃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한 번, 기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