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틴 경의 의식
화요일.
클로에는 알렉스로부터 매주 화요일은 다른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오후 6시, 210호. 손님은 마틴 경.
그녀는 이미 그를 두 번 봤다. 첫 번째는 파티장에서, 그가 그녀의 허리에 손을 얹었던 날. 두 번째는 2층 205호, 그가 와인을 마시며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날. 그때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음에 또 보자. 하지만 그다음에는 좀 더 친해졌으면 좋겠어.”
‘좀 더 친해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클로에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알렉스가 그녀에게 말했다. “마틴 경은 특별해. 다른 손님들처럼 단순한 육체적 관계가 아니라, ‘의식’을 원해.”
“무슨 의식이요?”
“그가 원하는 대로 해. 너는 이미 충분히 훈련됐어. 거부하지 마. 질문하지 마. 그냥 따라 해.”
그녀는 그날 저녁, 자신의 방에서 오랫동안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예전 같지 않았다. 너무나 평온했다. 너무나 텅 비어 있었다.
오후 5시 30분. 그녀는 210호로 내려갔다. 드레스는 검은색. 알렉스가 보내온 것이었다. 앞은 평범했지만 뒤는 거의 천이 없었다. 그녀는 등이 훤히 드러난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았다.
‘이런 옷은 입어본 적이 없는데.’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서는 모든 옷이 결국 벗겨진다. 드레스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립스틱을 발랐다. 이번에는 진한 붉은색이 아니라, 거의 핏빛에 가까운 색. 알렉스가 메모를 남겼다. “마틴 경은 이 색을 좋아해.”
테이블 위에는 평소처럼 와인과 잔이 아니라, 촛불이 놓여 있었다. 양초 세 개. 하나는 길고, 둘은 짧았다. 그녀는 촛불에 불을 붙였다. 불꽃이 살짝 흔들렸다.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기다렸다.
오후 7시 정각.
문이 열렸다. 마틴 경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그가 혼자였다. 경호원도 없이. 그의 손에는 작은 나무 상자가 하나 들려 있었다.
“클로에, 보고 싶었어.”
그녀는 일어나 미소 지었다. 입가만 올라갔다.
“마틴 경, 오늘은 무슨 특별한 날인가요? 촛불까지 준비했어요.”
“오늘은 특별한 날이지. 우리가 처음 만난 지 꼭 4주째 되는 날이야.”
그녀는 그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축하드려요.”
마틴 경은 그녀 앞에 서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그녀의 얼굴에서 드레스 끈으로, 그리고 다시 얼굴로 올라왔다.
“오늘은 특별한 ‘의식’을 준비했어.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질문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않아요. 여기서는 이미 모든 게 무서울 수 없게 됐어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나무 상자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열었다.
상자 안에는 검은 천 조각 하나, 그리고 작은 유리병 하나가 들어 있었다. 유리병 안에는 붉은 액체가 담겨 있었다.
“이건…?”
“질문하지 말라고 했지.”
그가 검은 천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뒤로 돌아가, 그 천으로 그녀의 눈을 가렸다.
“오늘은 내가 네 시선을 빼앗을 거야. 너는 내가 말하는 것만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시야가 차단되자, 그녀의 다른 감각이 예민해졌다. 그의 호흡 소리. 그의 옷깃이 스치는 소리. 촛불이 타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와인이 아니라, 유리병 안의 액체 냄새.
그것은 피 냄새였다.
“무서워?”
“아니요.”
“거짓말. 네 심장 소리가 들려.”
그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 천천히 드레스 끈을 따라 내려갔다.
“오늘 밤, 너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거야. 말하지 않아도 돼. 소리를 내지 않아도 돼. 그냥… 거기 있어.”
그의 손이 그녀의 드레스 지퍼를 내렸다. 드레스가 그녀의 몸을 타고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그녀는 속옷만 남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일어나.”
그녀는 일어섰다.
“오른쪽으로 두 걸음.”
그녀는 두 걸음 옮겼다. 발밑에 융단이 깔려 있었다. 방 중앙이었다.
“무릎 꿇어.”
그녀는 무릎을 꿇었다. 바닥은 차가웠다. 융단이 없었다. 대리석이었다. 차가움이 무릎을 타고 올라왔다.
그가 그녀 뒤에서 다가왔다. 그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아프지 않았다. 익숙했다.
“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야. 다른 여자들과 달라. 너는 지적이고, 예쁘고, 그리고… 완벽하게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어.”
그의 손이 그녀의 턱을 잡아 위로 들었다. 그녀는 눈이 가려진 채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
“입 벌려.”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가 무언가를 그녀의 입 안에 넣었다. 작고, 동그란 것. 알약이었다.
“삼켜.”
그녀는 삼켰다. 쓴맛이 입 안에 퍼졌다.
“이제 30분 후면 네 몸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거야. 저항하지 못할 거야. 너는 오직 나만 바라보게 될 거야. 아니, 지금도 나만 바라보고 있지.”
그의 손이 그녀의 등을 타고 내려갔다. 척추를 따라, 천천히. 그녀는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알약 때문이었다. 아니, 그의 손길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미 구분할 수 없었다.
30분은 길었다.
그는 그동안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빗어주고, 그녀의 어깨에 입을 맞추고,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씩 만지작거렸다.
“네가 UCL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는 네 사진을 봤어. 알렉스가 보여줬지. 그때 나는 말했어. ‘이 여자는 내 거야’.”
“…”
“너는 강의실에서 빛나고 있었어. 교수들도 너를 주목했지. 나는 그 교수들을 모두 알고 있어. 그들 중 일부는 여기도 와. 네가 알고 있던 교수도 있을 거야.”
그녀는 리처드 교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는 여기서 무엇을 느껴? 두려움? 수치심? 아니면… 이미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그녀는 대답하려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알약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녀의 혀가 무거워졌다. 그녀의 팔과 다리가 나무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의식은 선명했다. 너무나 선명했다.
“이제 됐어. 일어나.”
그녀는 일어났다. 그녀의 몸이 그의 명령에 반응하고 있었다.
“침대로 가. 누워.”
그녀는 침대로 걸어가 누웠다. 그녀의 몸은 움직였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 옆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침대 위에 올라탔다. 그의 무게가 스프링을 눌렀다.
“오늘 밤, 나는 네가 잊지 못할 하루를 만들어 줄 거야. 아니, 잊을 수 없게 만들 거야.”
그의 손이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알약 때문이었다. 아니, 그녀의 마음이 이미 그녀의 몸과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은 가려져 있었지만, 천장의 금이 그려졌다. 그 금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녀는 그의 몸의 움직임을 느꼈다. 기계적인 움직임. 그녀는 이미 너무나 익숙했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클로에.”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불렀다. 더 크게.
그녀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턱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내 이름을 불러!”
그녀는 입을 열었다.
“마틴 경.”
그의 숨이 멈췄다. 그리고 다시 거칠어졌다.
그가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위에서 쓰러졌다.
그가 일어나 옷을 입는 소리가 들렸다. 클로에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은 가려진 채.
“오늘 밤은 정말 특별했어.”
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다.
“다음 주에도 올게. 그때는 또 다른 의식을 준비할 거야.”
그가 문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문이 열리고, 닫혔다.
그리고 침묵.
클로에는 천천히 눈가의 천을 벗겼다. 방 안은 어두웠다. 촛불이 거의 다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일어나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몸은 멀쩡했다.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입 안에는 여전히 알약의 쓴맛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화장실로 걸어갔다. 세면대에 팔꿈치를 기대고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립스틱은 거의 다 지워져 있었다. 그녀는 손등으로 남은 것을 닦아냈다.
수도꼭지를 틀어 찬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물을 멈추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거울 속에는 다시 창백한 얼굴이 비쳤다.
그녀는 3층으로 올라가 방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금이 없었다. 깔끔했다. 그 깔끔함이 그녀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다음 주 화요일을 생각했다. 또 다른 ‘의식’. 또 다른 알약. 또 다른 그의 손길.
그녀는 눈을 감았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 말을 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