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비 오는 도시의 첫발
오클랜드의 겨울은 한국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영상 10도 안팎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스며드는 습기와 새하얗게 내리깔리는 비는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하늘은 일주일 내내 잿빛이었고, 햇빛은 기억 속에서조차 희미해져 갔다.
유진은 큐브릭이라는 이름의 고시원 같은 셰어하우스 창문 너머로 내리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천장에는 곰팡이가 슬었고, 문은 좀처럼 잘 닫히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면 낡은 카펫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곳은 오클랜드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 중 하나였다. 한 달에 450달러. 시내에서 20분 거리, 버스 요금까지 합치면 결코 싼 값은 아니었지만, 이 도시에서 이 가격에 방을 구한 건 운이 좋은 편이었다. 에어비앤비 하나 잡아도 하루에 백 달러는 기본이었으니까.
하지만 운이라는 건 원래 다른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유진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어제 보낸 문자에 답장이 와 있었다.
[은행] 귀하의 계좌 잔액은 347.82달러입니다.
이번 달 월세를 내면 남는 돈은 고작 백 달러도 안 됐다. 식비는? 버스비는? 그리고 다음 달 학비는 어떻게 할 건가?
오클랜드 대학교의 국제 학생 등록금은 학기당 2만 달러에 육박했다.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는 돈은 한계가 있었고, 유진은 주변의 한국인 유학생들처럼 편의점이나 식당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비자였다. 학생 비자로는 주당 20시간 일할 수 있었고, 그걸로는 월세와 식비조차 빠듯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나름대로 잘나가는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왔다. 부모님은 중산층이셨고, 딸의 유학을 위해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셨다. “너만 잘되면 돼”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유진의 어깨를 짓눌렀다. 잘 돼야 한다. 그런데 잘 된다는 게 무엇일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유진은 많은 것을 포기했다. 친구들, 익숙한 거리, 엄마가 해주시는 밥.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오클랜드는 유진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지하철도 없는 이 도시에서 버스 요금은 갈수록 올랐다. 한국마트에서 파는 라면 한 묶음의 가격은 10달러가 넘었다. 커피 한 잔에 6달러. 그녀는 더 이상 스타벅스에 가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파는 3달러짜리 인스턴트 커피로 만족해야 했다.
유진은 다시 휴대폰을 뒤적였다. 페이스북의 한국인 유학생 그룹. ‘알바 구합니다’는 글은 이미 수십 개나 올라와 있었고, 대부분 답변이 없는 상태였다. 경쟁이 치열했다. 유학생들은 서로가 서로의 적이었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글이 하나 있었다.
*[고액 파티 스태프 모집] 한 번에 500~1000달러 현금 지급. 나이/성별 무관. 복장만 단정하시면 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비밀 댓글 또는 메신저로 연락 주세요. 작성자: 한소라.*
500에서 1000달러.
편의점 알바를 20시간 해야 버는 돈이었다. 한 달 치 월세를 단 하루 만에 벌 수 있다는 뜻이었다.
유진은 게시글을 캡처했다. 아직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게시글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날 밤, 유진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천장의 곰팡이 무늬를 세다가 결국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게시글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또 읽었다.
한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자기암시를 하며, 유진은 마음을 접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좀 더 알아보자. 더 안전한 알바가 분명 있을 거라고.
그러나 그 ‘안전한 알바’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 후.
“유진아, 이거 좀 봐봐.”
룸메이트 지민이 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민은 유진보다 두 살 위였고, 같은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큐브릭의 방은 원래 2인실이었지만, 유진은 지민과 함께 쓰고 있었다. 방 크기는 겨우 12제곱미터. 침대 두 개와 책상 하나, 그리고 좁은 복도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민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구찌 쇼핑백이었다.
“어디서 났어, 그게?”
“어제 갔었어. 시내에. 세일했거든.”
지민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침대 위에 쇼핑백을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2천 달러는 족히 넘어 보이는 가죽 자켓이 들어 있었다. 유진은 할 말을 잃었다. 지민은 같은 유학생이었다. 같은 셰어하우스에서 월세를 반씩 내고 있었다. 그런데 명품을 사는 데 무슨 돈이?
유진은 지민을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지민은 경상도 출신으로, 부산의 한 여자고등학교를 나왔다. 처음 만났을 때 지민은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편이었다. 유학 온 지 2년째였지만 영어는 여전히 서툴렀다. 그런데 이상했다. 최근 들어 지민은 점점 화려해지고 있었다. 옷도 비싼 걸 입기 시작했고, 화장도 짙어졌다. 밤에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야, 너 돈 많이 버는 아르바이트 하나 봐?”
유진이 물었다. 지민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
“음… 그냥, 아는 사람 소개로 좀 알바하고 있어. 힘들긴 한데 괜찮아.”
“무슨 알바인데?”
“글쎄… 말하자면 좀 그렇고. 그런데 유진아, 너 돈 필요하지?”
유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이 다가와서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왠지 모를 불안함이 따라왔다.
“내가 소개해줄까? 사람은 괜찮아. 나쁜 사람 아니야.”
유진은 잠시 생각했다. 지민은 룸메이트다. 함께 산 지 석 달이 넘었다. 서로의 생활 패턴을 알고, 가끔은 함께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그런 지민이 소개해주는 일이라면,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유진은 잠들기 전에 지민에게 물었다.
“지민아, 그 알바… 무슨 일 하는 거야?”
지민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파티 도우미. 그냥 가서 웃고 떠들고, 분위기 띄워주는 거야. 어렵지 않아.”
“그런데 왜 그렇게 돈을 많이 줘?”
지민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사람들이 돈이 많으니까. 그게 다야.”
하지만 유진은 그 대답에 납득하지 못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누군가가 돈을 많이 준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진은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사흘 후.
유진은 지민의 손에 이끌려 시내 중심가의 한 클럽 앞에 서 있었다. ‘레벤’이라는 간판이 붙은 그곳은 겉보기엔 평범한 나이트클럽처럼 보였지만, 문 앞에는 검은색 슈트를 입은 양복쟁이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차가웠고,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일반인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지민이 그들 중 한 명에게 무언가 보여주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어주었다.
클럽 안은 유진의 상상을 훨씬 웃돌았다.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VIP 구역은 사실상 별개의 공간이었다. 크리스털 샹들리에 아래로는 검은색 가죽 소파들이 놓여 있었고, 한쪽에는 작은 바가 마련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환하게 웃고 있었고, 음악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고급스러운 재즈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중앙에, 그녀가 있었다.
한소라.
길고 곧은 흑발. 새하얀 피부. 붉은 립스틱이 유일한 포인트였다. 그녀는 마치 이 공간의 주인인 양, 소파에 깊숙이 기대어 샴페인을 들고 있었다. 옆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롤렉스 시계가 그녀의 손목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화려함 그 자체였다.
“어, 왔어?”
소라가 일어나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부드러웠고, 따뜻했고, 유진에게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가족 같은 느낌을 주었다.
“유진이지? 지민이가 얘기 많이 했어. 반가워.”
그녀는 다가와서 유진의 손을 잡았다. 손길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따뜻했다.
“오늘 처음이니까 무리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있어. 괜찮아. 여기 사람들 다 좋은 사람들이야.”
소라가 손짓하자 웨이터가 조용히 샴페인 두 잔을 가져왔다.
“이거 마셔봐. 분위기 좀 내자.”
유진은 잔을 받아 들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거부할 용기도 없었다. 그녀는 친절했고, 공간은 화려했고, 유진은 그곳에 속한 듯한 착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파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화려해졌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어떤 남자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한 여자에게 샴페인을 병째로 선물했다. 또 다른 남자는 유진에게 다가와 말했다.
“너 오늘 처음이지? 여기 분위기 어때?”
유진이 대답을 망설이자, 그는 웃으며 백 달러짜리 지폐를 건넸다.
“아, 감사합니다… 이걸 왜 주시는 건지…”
“고맙긴. 너 소라가 데려온 애면 앞으로 자주 보겠네. 인사 잘해둬.”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러 갔다. 유진은 그 백 달러를 손에 쥐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편의점에서 다섯 시간을 서서 일해야 버는 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왔다는 이유만으로 받았다.
소라는 유진에게 계속 신경을 써주었다. 먹을 것을 권했고, 누군가 유진에게 과하게 말을 걸면 살짝 제지하기도 했다. 그녀는 완벽한 호스트였다. 하지만 유진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 모든 친절이 계산된 것임을.
“유진아, 너 여기 자주 오면 좋겠다. 너랑 있으면 나도 편해.”
소라가 살짝 속삭였다. 그녀의 눈빛은 달콤했고, 유진은 그 달콤함에 취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유진은 점점 긴장이 풀렸다. 샴페인을 두 잔, 세 잔. 처음에는 톡 쏘는 맛이 낯설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멀게 들렸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돌아갈 때쯤, 유진의 손에는 백 달러짜리 세 장이 쥐어져 있었다.
파티에 참석한 대가였다.
셰어하우스로 돌아오는 길.
지민과 유진은 밤거리를 걸었다. 오클랜드의 밤공기는 차가웠지만, 유진의 마음은 뜨거웠다. 손에 쥔 3백 달러. 이 돈이면 다음 달 월세는 문제없었다.
“어때, 괜찮았어?”
지민이 물었다.
“응. 그런데 지민아, 저게 뭐야? 그냥… 술 마시고 웃고 있는데 돈을 주네?”
지민이 살짝 웃었다. 그 웃음에는 무언가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 유진은 그때는 몰랐다.
“글쎄. 사람들이 돈이 많으니까 그런 거지. 그리고 저런 데는 인맥이 중요해. 아는 사람 많으면 나중에 뭐든 잘 풀려.”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소라는 인맥이 많았고, 지민도 그 인맥 덕분에 명품을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유진아.”
지민이 말투를 바꿨다. 평소의 가볍고 편안한 말투가 아니었다. 무언가 무거운 것이 깔려 있었다.
“너 돈 많이 필요하지? 저런 걸로는 한계가 있어. 파티 알바는 한 번에 백 달러, 길어야 삼백 달러가 전부야. 그런데…”
지민이 잠시 멈췄다.
“쉰 빵 훨씬 쉽게 버는 방법이 있어.”
유진이 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무슨 방법?”
지민도 멈춰 섰다.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그 반짝임은 유진이 알던 지민의 것이 아니었다. 뭔가 깊은 곳에서 번져 올라오는, 낯선 느낌이었다.
“토니 아는 형님이 계셔. 사업하시는 분인데, 돈이 정말 많으셔. 그리고 젊은 사람들 좋아하셔. 나도 그 형님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고.”
“사업? 무슨 사업?”
“글쎄… 여러 가지. 그런데 중요한 건, 그 형님이 돈을 빌려주기도 하셔. 조건도 좋아. 잠깐만 쓰면 되니까. 이자도 거의 없어.”
유진은 잠시 생각했다. 학비는 다음 달까지였다. 생활비는? 지금 당장이라도 돈이 필요했다.
“소개해줄 수 있어?”
그 말이 나오자마자,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 너무 쉽게 믿는 거 아닌가?
하지만 지민은 이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응. 내일 만나기로 약속 잡아줄게.”
그날 밤, 유진은 잠들지 못했다.
천장의 곰팡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과연 이 선택이 맞는 걸까? 토니라는 사람은 누구일까? 왜 그렇게 쉽게 돈을 빌려준다는 걸까?
하지만 유진은 알지 못했다.
지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소라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토니는 항상 알고 있었다.
이 도시의 비는 오늘도 멈추지 않았다.
끝없이, 냉혹하게, 아무런 미련 없이.
유진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잔액 부족 알림은 이미 세 번이나 와 있었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