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황무지의 생존자
벽모퉁이 너머로 사내의 거구 그림자가 서치라이트 불빛을 깨며 잔인하게 들이닥치는 찰나, 소피아는 비명 대신 척추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독기 어린 신음을 지르며 녹슨 철파이프를 번쩍 치켜들었다. 5-2화에서 매일 밤 사내들의 난잡한 술상 위로 던져져 나체가 유린당하고, 부러진 손가락으로 카르텔의 피 묻은 돈을 세탁해야 했던 지옥 같은 나날들이 그녀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것은 화려한 무술이 아니었다. 오직 잡히면 뼈가 갈려 죽는다는 지독한 생존 본능과 악마들을 향한 서늘한 증오뿐이었다.
깡—!
지독하게 둔탁하고 무거운 파열음이 폐주유소의 깨진 콘크리트 벽면을 세차게 뒤흔들었다. 소피아가 만신창이가 된 온몸의 세포를 쥐어짜 휘두른 철파이프는 사내의 관자놀이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부드득 하는 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두개골이 함몰되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검붉은 선혈이 알몸 상태의 소피아의 하얀 얼굴과 얇은 가슴팍을 뜨겁게 적셨다. 사내의 손에서 떨어진 권총이 먼지 구덩이 바닥을 가볍게 굴렀다.
“이 미친년이…… 지금 무슨 짓거리야!”
픽업트럭 운전석에 앉아 있던 다른 조직원이 당황하여 욕설을 내뱉으며 문을 열고 권총을 뽑아 들려 했다. 하지만 이미 거울 방 수십 개의 눈빛 속에 갇혀 영혼을 타살당했던 수치심의 기억이 폭발한 소피아가 한 발 더 빨랐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사내의 권총을 부러진 손가락 마디마디로 거칠게 움켜쥐고, 트럭 운전석을 향해 눈을 질끈 감은 채 미친 듯이 방화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총의 반동으로 부러진 손목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탕! 탕! 탕! 탕—!
지독한 화약 내음과 함께 고막을 찢는 총성이 황무지의 새벽 공기를 사정없이 갈랐다. 조준도 하지 못한 채 갈긴 소피아의 총탄들 중 몇 발이 운전석 사내의 가슴과 목덜미를 꿰뚫었고, 유리창이 박살 나며 피비린내 나는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운전석의 사내는 단발마의 신음과 함께 핸들 위로 엎어지며 즉사했다. 픽업트럭의 둔탁한 경적 소리가 황무지에 길게 울려 퍼지며 사내들의 도살을 고했다.
사투가 끝난 폐주유소에는 오직 소피아의 거친 쇳소리의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그녀의 온몸은 자신을 유린했던 사냥개들이 흘린 피와 자갈밭을 기어오느라 찢어진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시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복수를 완수했다는 카타르시스 같은 한가한 감정은 없었다. 안가에서 추가 추격조가 몰려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녀는 운전석의 시체를 문밖으로 거칠게 밀어내고, 폐주유소 구석에서 패혈증 고열로 의식을 잃어가는 남편 디에고를 안아 들고 트럭 뒷좌석에 겨우 태웠다. 사내들의 주머니에서 확보한 소총과 탄창들을 조수석에 던져놓은 소피아는,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 안가의 반대편, 즉 미국 국경을 향해 황무지의 거친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안가 방향에서 무장한 카르텔의 다른 트럭 불빛이 백미러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아 그녀는 핏발 선 눈으로 오직 앞만 보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사흘 뒤,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지대인 티후아나 외곽의 어느 한적한 밀수 기지.
소피아는 카르텔의 트럭을 황무지에 버린 채, 사내들의 몸에서 빼앗은 비자금 가방을 밀수업자에게 던져주고 브로커를 통해 위조 여권 두 장을 손에 넣었다. 삼엄한 국경의 경계망을 야반도주하듯 기어 넘어가, 미국의 어느 이름 모를 낡은 외곽 요양원 지하 병실에 디에고를 눕혔을 때, 디에고는 패혈증의 독기가 온몸에 퍼져 이미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미국 병원의 세련된 의료진도, 카르텔의 지하방에서 무릎뼈가 썩어 들어간 남편을 살려내지는 못했다.
“소피아…… 고마워…… 나를 그 지옥에서 꺼내줘서…….”
디에고는 아내의 피멍 든 손을 꼭 잡은 채, 마침내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소피아는 울지 않았다. 그녀의 눈물샘은 이미 안가의 대기실에서 사내들에게 돌려지며 짓밟히던 그 수많은 밤 동안 완벽하게 말라붙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시신을 미국의 이름 모를 황무지 공동묘지에 비석도 없이 묻고 돌아오는 길, 소피아는 싸구려 모텔의 깨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고요히 바라보았다.
과달라하라의 화려했던 미녀 사업가 소피아는 그곳에 없었다. 거울 속에는 카르텔 사내들의 피로 온몸을 씻어내고, 오직 생존을 위해 동포를 도살한 채 타국으로 흘러 들어온 만신창이 생존자만이 서 있었다.
그녀는 사내들에게서 빼앗은 권총을 허리춤에 깊숙이 찔러넣으며 미국의 어두운 거리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카르텔의 잔당들이 언제 자신을 찾아내 도살할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과 노이로제 속에서 평생을 쥐새끼처럼 숨어 살아야 하는 비참한 도망자의 신세. 하지만 그녀의 붉게 가라앉은 눈동자에는 더 이상 네스토르에게 순종하던 가축의 유순함은 남아있지 않았다. 과달라하라 미녀의 잔혹사는 그렇게 화려한 복수극이 아닌, 평생을 도망치고 숨어야 하는 지독한 생존의 낙인을 가슴에 묻은 채, 차가운 미국의 암흑 속에서 완벽하게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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