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잔혹사 베트남편 #001] 호찌민의 그림자 여왕 – 제5-2화: 인질의 사슬 (실제 사건 파일 기반 각색)

제5-2화: 인질의 사슬

 

오전 9시. 호찌민 1군의 번화가에 위치한 프리미엄 자산 자문사 건물 앞은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오토바이 행렬로 활기가 넘쳐났다.

 흐엉은 선글라스 뒤로 퉁퉁 부은 눈을 감춘 채 차에서 내렸다. 언제나처럼 구김 하나 없는 고급 리넨 재킷에 에르메스 켈리백을 든, 누가 봐도 선망할 만한 중산층 엘리트 여성이었다. 하지만 겉모습만 화려할 뿐, 그녀의 내면은 이미 잿더미가 되어 무너져 내린 지 오래였다.

사무실 집무실로 들어와 문을 잠그자마자, 흐엉은 참았던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선글라스를 벗어던졌다. 거울 속에는 공포와 죄책감으로 피폐해진 얼굴이 서 있었다.

 어설픈 판타지는 없었다. 3화에서 자존심과 체면을 모두 내려놓고 남자친구인 민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만 해도, 흐엉은 이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현명한 선택이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의 조폭들은 만만치 않았다. 탕의 조직은 흐엉이 저항하려 뻗은 구원의 손길을 비웃기라도 하듯, 민의 디자인 사무실을 처참하게 짓밟고 그의 오른손 손가락뼈를 잔인하게 부러뜨렸다. “신고하는 순간 다음은 목숨줄”이라던 브로커 남 실장의 비열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30억 동이라는 빚의 무게도, 금융 당국의 숨 막히는 감시도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민의 목숨과 푸미흥 부모님의 안전이라는 끔찍한 인질의 사슬이 그녀의 목을 더 단단히 죄어왔을 뿐이었다.

징——.

책상 위에 놓인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뜬 것은 민이 입원해 있는 호찌민 1군 종합병원의 번호였다. 흐엉은 가슴을 졸이며 다급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간호사님! 민 씨 상태는 좀 어떤가요?”

“흐엉 씨, 방금 민 씨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부러진 손가락뼈를 고정하긴 했는데… 건축가이신데 앞으로 미세한 도면 작업을 예전처럼 하실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병실 주변을 기웃거리던 문신을 한 사내들이 다녀간 뒤로 민 씨가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어요.”

가슴이 날카로운 송곳으로 찔린 듯 아파왔다. 촉망받던 젊은 건축가의 미래를 자신의 빌어먹을 투기 실패와 자존심이 통째로 망쳐버린 것이다. 게다가 병원까지 감시를 붙여놓은 탕의 집요함에 척추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제가 곧 갈게요. 민이 절대 혼자 있게 하지 말아 주세요.”

 전화를 끊은 흐엉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 민을 품에 안고 펑펑 울고 싶었지만, 그녀에게는 그럴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탕이 놓아준 유동성 자금으로 당장의 부도는 막았지만, 그것은 피로 쓴 차용증이었다. 이제 그녀는 탕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야 했다.

그때, 흐엉의 개인 Zalo 메신저로 발신인을 알 수 없는 사진 한 장이 전송되었다.

사진 속에는 병실 침대에 붕대를 감은 채 누워있는 민의 모습과, 그 너머 창문 밖에서 민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 실장의 서늘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사진 하단에는 탕의 묵직한 음성 메시지가 이어졌다.

“흐엉 대표, 남자친구의 손가락이 참 안타깝게 됐어. 하지만 자존심을 세운 대가치고는 이 정도로 끝난 걸 다행으로 알아야지. 오늘 오후 3시, 1군 랜드마크 빌딩 스카이라운지에서 해외 투자청 고위 관계자들과의 미팅이 있지? 당신이 가진 그 화려한 금융 인맥과 도도한 말빨로 그들의 환심을 사. 그리고 우리 조직이 세운 유령 펀드 계좌로 그들의 자산 500억 동을 유치해라. 만약 조금이라도 딴맘을 먹거나 삐끗하는 순간… 병실에 있는 당신 애인의 나머지 손가락들도 전부 분러뜨려 줄 테니까.”

탁, 하고 메시지가 끊겼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3화에서 아무리 올바른 선택을 하고 발버둥 쳤어도, 현실의 괴물은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쥔 채 놔주지 않았다. 낮에는 고결한 자산관리사의 가면을 쓰고 수백억의 돈을 주무르며 웃어야 했고, 밤에는 병실에 누운 연인의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탕의 검은 돈을 세탁하는 노예로 살아야 하는 참혹한 이중생활의 시작이었다.

흐엉은 깨진 자존심의 파편을 삼키며 서랍에서 새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그리고 다시 한번 차갑고 도도한 ‘금융 여왕’의 가면을 얼굴에 박아넣었다. 눈물이 흐르려 했지만 가슴 안쪽으로 억지로 밀어 넣었다.

 지금 무너지면 민이 죽는다. 부모님이 파멸한다. 위협과 공포는 동일했지만, 연인을 지켜야 한다는 마지막 일념이 그녀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흐엉은 문을 열고 집무실을 나섰다. 탕이 쳐놓은 촘촘한 덫의 한복판, 더 큰 위기와 마주해야 할 제6화의 최종 선택지를 향해, 그녀는 피눈물을 흘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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