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화려한 포식자의 타깃
사이공강을 품은 호찌민의 밤은 낮보다 붉고 습하다. 1군의 스카이라인을 메운 초고층 빌딩들이 자본주의의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처럼 묵직하게 침묵할 때, 여행자 거리와 레탄톤의 지하 세계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욕망이 뿜어내는 열기로 펄펄 끓어오른다. 그 욕망의 최정점, 네온사인이 가장 잔인하고 화려하게 빛나는 호찌민 중심가 한복판에 ‘흐엉(Hương)’의 왕국이 있었다.
서른하나. 남들은 하노이나 호찌민의 대기업에서 대리 직함을 달고 상사의 눈치를 보며 겨우 생계를 유지할 나이에, 흐엉은 외국계 유명 컨설팅 펌의 수석 자산관리사이자 호찌민 상류층을 상대로 한 프리미엄 투자 자문사 대표였다.
메콩델타의 가난한 시골 출신이 아닌, 호찌민에서 대대로 자리 잡은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이라는 화려한 스펙까지 더해져 언제나 도도함의 극치를 달렸다. 자수성가한 젊은 여성 엘리트라는 타이틀은 달콤했다. 세련된 미모와 날카로운 지식을 무기로 고위 공직자 자녀들과 부유한 사업가들의 인맥을 흡수하며, 그녀가 새로 론칭한 불법 사설 주식 리딩방과 자산 대행 플랫폼은 순식간에 수백억 동의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매달 그녀의 개인 계좌와 유령 법인 계좌로 수억 동의 수수료가 꽂힐 때만 해도, 흐엉은 자신이 이 화려한 경제 도시의 야경을 지배하는 여왕이 된 줄 알았다. 자만은 치명적인 독이었다. 호찌민 지하 세계를 장악한 진짜 포식자들은, 겉으로는 화려하게 빛나지만 리스크 관리 능력이 취약한 이 젊은 여성을 가장 좋은 먹잇감으로 점찍고 숨을 죽인 채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화근은 멈추지 않는 탐욕과 과도한 레버리지였다. 더 큰 자금을 굴려 호찌민 레지던스 몇 채를 통째로 인수하려던 타이밍을 귀신같이 노리고, 베트남 금융공안부의 기습적인 불법 리딩방 단속과 계좌 동결 조치가 터졌다. 악재는 결코 홀로 오지 않는 법이었다. 갑작스러운 단속 소문에 놀란 상류층 투자자들이 일제히 투자금 반환을 요구하며 흐엉의 목을 죄어왔고, 당장 내일 오전까지 카지노 VIP 룸에서 끌어다 쓴 단기 유동성 자금과 사설 펀드 상환금 총 30억 동(한화 약 1억 6천만 원)이 일시에 청구되었다.
베트남 현지 유흥 및 금융 바닥의 특성상, 단 한 시간만 지급이 밀려도 공안에 고발장이 접수되고 평생 쌓아 올린 명예와 신분이 길바닥에 처박히는 구조였다. 자존심이 목숨보다 중요한 중산층 엘리트 흐엉에게는 숨을 고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는 다급히 호찌민에 존재하는 인맥을 총동원해 주거래 은행의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온 것은 서늘한 거절뿐이었다. 베트남 금융 당국의 조사가 개시된 마당에 정상적인 제1·2금융권의 대출 심사는 최소 한 달 이상 소요된다는 절망적인 답변만 되풀이되었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상환 계좌로 30억 동이 입금되지 않으면, 바로 고발 조치 들어갑니다, 흐엉 씨. 우리 쪽 투자자들도 더 이상은 봐줄 수 없다고 난리예요. 감옥에 가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하세요.”
리딩방의 핵심 회원이었던 한 고위 공직자 자녀의 건조하고 냉정한 목소리가 스마트폰 수화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흐엉의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아무런 담보도 없이 생현금 30억 동을 구하는 것은 신이 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무실의 에어컨은 차가운 바람을 쉴 새 없이 뱉어내고 있었지만, 흐엉의 척추를 따라 흐르는 식은땀은 멈추지 않았다. 당장 내일 아침이면 부모님이 계신 푸미흥의 고급 자택은 물론, 자신이 일구어온 화려한 커리어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절대적인 위기였다.
코너에 몰려 호흡조차 가빠지던 끈적한 호찌민의 밤, 흐엉의 스마트폰이 Zalo 알림음과 함께 요란하게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남(Nam) 실장’. 평소 호찌민 1군의 럭셔리 카지노와 사설 물주들 사이를 오가며 부유층들에게 급전을 주선하던 은밀한 브로커였다. 흐엉은 벼랑 끝에서 썩은 밧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흐엉 대표, 얼굴색이 완전히 종잇장처럼 변했다는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어왔어. 당장 내일 아침까지 큰돈을 메워야 한다면서?”
남 실장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과도하게 끈적하고 친근했으며, 그래서 더 기괴한 이질감을 풍겼다.
“남 실장님, 지금 장난칠 시간 없어요. 당장 내일 오전까지 현금으로 30억 동이 필요해요. 단기 대환이든 뭐든 좋으니까, 즉시 손을 쓸 수 있는 음밀한 라인이 있나요?”
전화기 너머로 낮게 깔리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냥감이 덫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올 때, 숲속의 포식자가 짓는 특유의 잔인한 웃음이었다.
“흐엉 씨니까 내가 특별히 1군 최고의 큰손을 연결해 주는 거야. 담보? 그런 거 필요 없어. 공안 조사가 시작된 마당에 무슨 신용조회를 하겠어? 그냥 흐엉 씨라는 그 대단한 이름 석 자랑, 당신이 가진 화려한 인맥을 보고 당일로 30억 동 바로 쏴줄 수 있는 회장님이 계셔. 이율이 조금 세긴 하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야? 당장 내일 공안에 연행돼서 감옥에 처박히는 것보단 백번 낫잖아.”
그것이 베트남 현지 신흥 조폭 조직의 자금줄이자, 호찌민 지하 세계를 장악한 기업형 불법 사채 조직의 두목 ‘탕(Thắng)’이 파놓은 거대한 함정이라는 것을 흐엉은 미처 알지 못했다. 파멸에 대한 극심한 공포로 눈이 멀어버린 흐엉은 남 실장이 찍어준 호찌민 1군의 최고급 서비스 아파트 주소를 멍하니 받아 적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완벽했던 인생을 통째로 집어삼킬 포식자의 소굴을 향해, 돌이킬 수 없는 첫걸음을 내딛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