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잔혹사 유럽편 #001] 밀라노의 마네킹 – 1화: 베르사체 숄의 핏빛 올가미 (실제 사건 파일 기반 각색)

1화: 베르사체 숄의 핏빛 올가미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 광장을 집어삼킨 가을의 석양은 잔인할 정도로 화려했다. 세계 패션의 중심지라 불리는 이곳, 마랑고니 디자인 스쿨의 수석 졸업을 앞둔 카밀라(22)는 붉게 물든 대리석 바닥을 멍하니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카밀라는 밀라노 유학생들 사이에서 부러움과 질투를 한 몸에 받는 수재였다. 지적인 눈빛과 밀라노의 유행을 선도하는 감각적인 스타일. 그러나 그녀가 걸친 화려한 베르사체 숄 안쪽에는, 숨이 막혀 뼈마디가 바스러질 것 같은 빚의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유학 자금을 대주던 집안이 갑작스러운 금융 사기로 파산한 이후, 밀라노의 살인적인 집세와 마지막 학기 졸업 작품 제작비 만 이천 유로를 구하지 못하면 당장 내일 학적에서 제적되고 불법 체류자로 쫓겨날 판이었다. 주위에 자존심을 굽히고 손을 벌려보았으나, 유럽의 차가운 개인주의는 그녀에게 단 1유로의 동정도 허락하지 않았다.

“카밀라, 그렇게 도도하게 굴더니 결국 돈 앞엔 장사 없지? 내가 말했잖아. 밀라노 디자인 거물들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프라이빗 사채 펀드가 있다고.”

  같은 과 선배이자 이미 카르텔의 화려한 앞잡이가 된 프란체스카는 카밀라의 타들어 가는 속을 귀신같이 파고들었다. 프란체스카의 안내를 받아 카밀라가 도착한 곳은 밀라노 패션 지구 중심가의 한 최고급 쇼룸. 그곳에는 맞춤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은 사내, 루카(45)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를 지배하는 악명 높은 거대 카르텔 ‘카모라(Camora)’의 밀라노 자금 세탁 총책이자, 유학생들과 모델 지망생들을 상대로 고리사채를 놓는 잔혹한 포식자였다.

“반갑습니다, 카밀라 양. 마랑고니의 천재 디자이너가 돈 따위에 청춘을 낭비하는 건 이탈리아 패션계의 손실이지요. 서류는 간단합니다.”

  루카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만 이천 유로가 든 가방과 함께 계약서를 내밀었다. 일주일 뒤 원금 상환, 이자는 단 10%. 당장 눈이 뒤집힌 카밀라는 계약서 뒷장에 숨겨진, 이탈리아 사법부의 맹점을 교묘하게 깎아낸 독소 조항들을 보지 못했다. ‘기한 내 미상환 시, 채무자는 채권자가 지정하는 법인의 명의 및 신체 전권(全權)을 위임한다’는 올가미였다. 카밀라는 자존심과 조급함에 눈이 멀어, 악마가 파놓은 함정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졸업 작품 전시회가 끝나고 일주일은 화살처럼 흘렀다. 약속된 상환일 전날 밤, 루카의 수하들이 카밀라를 밀라노 외곽의 폐쇄된 패션 가공 공장 안쪽의 비밀 아지트로 다시 불러들였다. 돈을 건네려는 카밀라에게 루카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장부를 들이밀었다.

“카밀라 양, 이탈리아 법을 잘 모르는군. 일주일 복리가 ‘매일’ 10%야. 게다가 프란체스카가 네 이름으로 가져간 고급 원단 대금 삼만 유로가 네 채무로 연대 보증 이관되었지. 네가 파티에서 마신 샴페인에 든 게 단순한 술인 줄 알았나?”

프란체스카는 이미 카르텔의 미끼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클럽 마약인 GHB와 엑스타시에 중독되어 가고 있었던 카밀라의 채무는 순식간에 육만 유로로 불어나 있었다.

“서, 서류가 사기잖아요! 당장 밀라노 경찰(Polizia)에 신고하겠어요!”

카밀라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서려 하자, 곁에 서 있던 거구의 행동대장 안토니오가 그녀의 머리채를 휘잡아 철제 재봉틀 테이블 위로 거칠게 내리찍었다. 콰앙!

“경찰? 해봐, 년아. 이 공장 부지 명의가 누군 줄 알아? 이탈리아 국가경찰청 고위 간부의 친인척이야. 그 양반이 매달 우리에게 받는 뒷돈이 얼마인지 네 눈으로 보여줘?”

  두피가 찢어지는 극심한 고통과 함께 화려한 밀라노 뒷면의 추악한 심연이 열렸다. 안토니오는 저항하는 카밀라의 사지를 붙잡아 철제 침대에 던졌고, 루카는 주머니에서 고농도 동물용 마취제와 약물이 혼합된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자, 마랑고니의 화려한 런웨이는 여기까지다. 오늘부터 넌 다크웹에서 가장 비싸게 팔릴 내 담보물이자, 우리 명의 세탁 공장의 마네킹이야.”

  차가운 바늘이 카밀라의 가녀린 목덜미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온몸의 신경에서 힘이 스르륵 빠져나가며, 의식은 생생한데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완전한 항거불능 상태가 되었다. 눈앞이 흐려지는 암전 속에서, 루카와 안토니오, 그리고 밤의 포식자들이 나체로 변해 그녀의 몸 위로 떼거리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공장 천장에 설치된 고성능 카메라의 빨간 녹화 불빛이 잔인하게 번뜩였다.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밀라노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던 여대생의 영혼은 갈가리 찢겨 나폴리 카르텔의 시궁창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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