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사투의 끝, 운명의 주사위
‘삐- 삐- 삐-’
중환자실의 기계음은 여전히 건조하고 차가웠다.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인간의 나약한 호흡을 잔인하게 계측하는 그 소리는, 병실을 가득 채운 하얀 소독약 냄새와 버무려져 공간 전체를 거대한 무덤처럼 만들고 있었다. 민석이 사채 조직의 무자비한 폭행에 스러져 이 차가운 침대 위에 못 박힌 지 정확히 삼 주째 되던 날 밤, 기적처럼 그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청담동 ‘벨벳’의 영업이 모두 끝나고, 단골 취객들의 추악한 배설과 독한 위스키 냄새, 그리고 매캐한 시가 연기에 온몸이 절어 유령처럼 병실로 기어들어 온 아현은 민석의 감긴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목격했다. 밤마다 자신을 유린하던 포식자들의 손길이 남긴 모멸감을 씻어낼 새도 없이 달려온 병상이었다.
“……민석아? 민석아, 내 말 들려? 정신이 좀 들어?”
아현은 간절한 목소리로 민석의 왼손을 움켜쥐었다. 살을 에는 듯한 한기 속에서 천천히 눈을 뜬 민석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다, 이내 눈물로 얼룩진 아현의 얼굴에 머물렀다. 살결이 아슬아슬하게 비치는 화려하지만 슬픔으로 엉망이 된 실크 드레스, 강남 바닥의 고급 마담들이나 쓰는 독하고 인공적인 향수 냄새, 그리고 온통 조폭들의 가학적인 멍 자국과 눈물 진흙탕으로 찌든 아현의 안색이 민석의 흐릿한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민석은 목을 죄어오는 산소호흡기 너머로 거친 숨을 몰아내쉬며 힘겹게 입술을 뗐다.
“아…… 현아…… 너…… 왜 그런 옷을…… 나 때문에…….”
아현은 가슴을 짓누르던 참았던 눈물을 단번에 터뜨리며 민석의 붕대 감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민석은 비록 오른팔의 신경이 완전히 죽어 붕대 속에서 기괴하게 꺾인 채 움직이지 못했지만, 아직 살아남은 왼손을 간신히 들어 올려 아현의 푸석하게 죽은 머릿결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매일 밤 늦은 새벽마다 저질스러운 유흥가의 술 냄새를 풍기며 찾아와, 자신의 병상 머리맡에서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다 잠드는 아현을 느끼며 그동안 지상에서 무슨 추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있었다. 강태훈 일당이 법을 떠들던 자신을 이렇게 처참하게 으깨어놓은 것도 모자라, 아현의 인신을 구속해 노예 계약서의 사슬로 묶어놓고 밤마다 마담으로 부려 먹고 있다는 그 지독한 진실을 말이다.
“나 때문에…… 네가…… 그 쓰레기 짐승들 밑에서…… 영혼을 팔고 있었던 거야…….”
민석의 짓눌린 눈가로 피눈물 같은 진한 눈물이 흘러내려 하얀 시트를 붉게 물들였다. 자신의 무력함이, 부러져 버린 방패가 아현을 지옥의 한복판으로 밀어 넣었다는 사실이 그의 심장을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았다. 아현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민석의 왼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었다.
“아니야, 민석아. 그런 말 하지 마. 너만 살면 돼. 네 심장만 뛰고 있으면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 정말 괜찮아. 나 벨벳에서 마담으로 일하면서 돈 많이 벌고 있어. 그러니까 제발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치료만 받아. 바보 같이 복수하겠다고, 경찰에 신고할 생각 같은 건 절대 하지 마. 그 인간들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야. 진짜 법도 안 통하는 괴물들이라고…… 네가 여기서 또 잘못되면, 그땐 난 정말 살아갈 이유가 없어. 내가 죽어, 민석아.”
하지만 아현의 처절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민석의 눈빛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비록 온몸의 사지는 조폭들의 배트와 쇠파이프 아래 잔인하게 꺾이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의 집요함과 꺾이지 않는 정신력까지 부러뜨리지는 못했던 것이다. 민석은 하나 남은 왼손에 핏줄이 터질 듯 힘을 주어 아현의 손을 꽉 잡았다.
“안아현, 내 말 똑똑히 들어. 이대로 순응하고 있으면…… 우리는 평생 그놈들 배때지에 피를 채워주는 기계로 살다가, 단물 다 빠지면 쓰레기통에 버려질 뿐이야. 내가…… 그놈들에게 습격당해 쓰러지기 직전에…… 내 역삼동 오피스텔 보일러실 구석 틈새에…… 강태훈이 보낸 조폭 놈들 차량 번호랑, 브로커 마 실장과의 통화 내용이 전부 녹음된 서브폰을 숨겨놨어. 그 새끼들이 내 몸은 샅샅이 뒤졌어도, 내 집 구석까지 이 잡듯 뒤질 시간은 없었을 거야.”
민석의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 속에서 수개월 만에 처음으로 서슬 퍼런 독기와 함께 날카로운 안광이 휘몰아쳤다. 사채 카르텔의 명줄을 끊어버릴 수 있는 마지막 화약고가 아직 세상에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오늘 밤이, 아니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야. 매일 새벽 4시 반이 되면, 저 병실 복도 끝에서 대기하고 있는 강태훈의 감시조 새끼들이 야간 근무 교대를 하느라 10분 정도 자리를 비워. 병원 지하 흡연구역으로 내려가서 담배를 피우며 교대 조를 기다리거든. 그러니까 지금 당장 침대 옆에 있는 이 휠체어에 나를 태워. 그리고 병원 뒷문 비상구로 나가서 택시를 타든, 기어서든 이 지옥을 탈출해야 해. 내가 아는 법조계 선배네 대형 로펌으로 직행해서 그 녹취록을 세상에 터뜨리고, 검찰 특수부에 직접 찔러야만 우리가 살 수 있어.”
민석의 단호한 선언을 들은 아현은 심장이 한순간에 멈추는 것 같은 극심한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민석이 내뱉은 제안은 단순히 탈출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숨을 통째로 걸어야 하는 단 한 번의 잔혹한 도박이었다. 지금 눈앞의 민석은 혼자 힘으로는 침대에서 일어서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중환자실의 환자였다. 그런 중환자를 철제 휠체어에 태우고 링거 줄을 뽑아 탈출하다가, 만에 하나 복도 엘리베이터 앞이나 병원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폭 감시조와 정면으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 자리에서 어떤 참혹한 보복이 가해질지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설령 이 병원을 기적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악마 같은 강태훈이 자신들의 탈출을 알아챈 순간 고향에 계신 민석의 늙은 부모님이나 남은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어떤 피의 보복을 가해올지 알 수 없었다. 그 뒤에 들이닥칠 파멸의 결과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현의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민석아, 안 돼…… 너무 위험해. 제발 그러지 마. 지금은 그냥 그들이 시키는 대로 머리 숙이고 엎드려 있자. 내가 술 좀 더 따르고, 밤마다 2차 나가서 그 새끼들 비위 맞춰주면 되잖아…… 그러면 적어도 너랑 네 부모님은 안전할 수 있잖아…….”
“안아현! 그렇게 영혼도 없이 껍데기만 살아 숨 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민석이 으스러진 목소리로 아현의 말을 거칠게 끊어버렸다. 턱 고정 장치가 심하게 흔들리며 그의 입가로 다시 붉은 핏물이 배어 나왔지만, 민석은 개의치 않고 아현의 어깨를 왼손으로 거세게 움켜쥐었다.
“저 사채업자 놈들은 우리가 빚을 다 갚는다고 해도 절대 우리를 놓아주지 않아! 네 몸과 영혼이 추악하게 다 말라 죽을 때까지 빨아먹고, 마지막엔 길바닥 쓰레기통에 내팽개칠 놈들이라고!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바로 지금, 내 심장이 뛰고 있을 때 이 노예의 사슬을 끊어내야 해. 나랑 같이 가자, 아현아. 내 오른팔 방패는 비록 부러졌어도, 너를 저 괴물들의 노리개로 살게 두느냐니 차라리 너랑 같이 길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 걸 택하겠어. 나를 믿고 제발 움직여!”
민석의 처절한 일갈이 병실의 차가운 정적을 날카롭게 찢었다. 병원 창밖으로는 밤새 어둠을 유지하던 강남의 하늘 위로 푸르스름하고 붉은 새벽빛이 어스름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벽면에 걸린 시계 바늘은 벌써 새벽 4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민석의 말대로 사채 조직의 감시조가 자리를 비우는 운명의 교대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10분이었다. 10분 뒤면 주사위는 강제로 굴려질 터였다.
아현은 침대 옆에 차갑게 접혀 있는 철제 휠체어의 바퀴와, 스스로 산소호흡기를 떼어낸 채 핏발 선 눈으로 자신을 결연하게 바라보는 민석의 눈빛을 번갈아 보았다. 그녀의 뇌리 속에서는 지난 수개월 동안 겪었던 지옥 같은 마담 생활, 사내들의 잔인한 손길, 그리고 만에 하나 실패했을 때 닥쳐올 처참한 보복의 시나리오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 4시 25분을 통과하고 있었다. 병실 문밖 복도 저 멀리서 감시조원들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야, 교대 조 올 시간 됐다. 내려가서 담배나 한 대 피우자” 하고 걸어 나가는 거친 발자국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민석이 말한 운명의 10분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아현의 손가락이 미치도록 떨렸다. 주사위는 던져지기 직전이었고,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여기서 민석의 뜻대로 휠체어에 그를 태우고 병원 뒷문으로 뛰어나가는 밧줄을 잡느냐, 아니면 이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민석을 침대에 눕힌 채 다시 강태훈의 손아귀로 기어 들어가 무릎을 꿇느냐.
어떤 줄을 잡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잔혹사는 평생 영혼이 썩어 문드러지는 서울역 지하도의 연옥이 될 수도 있었고, 혹은 자신들을 파멸시킨 카르텔을 향해 피로 물든 반격의 서막을 여는 위대한 시작이 될 수도 있었다. 창문 새로 들어오는 새벽빛이 아현의 눈동자를 비추었고, 그녀는 마침내 떨리는 손을 뻗어 철제 휠체어의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운명을 건 사투의 주사위가 거친 대리석 바닥 위로 마침내 굴러떨어졌다.
🧭 당신의 선택은? (최종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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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 1]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탈출을 포기한 채 카르텔의 뜻에 순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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