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화려한 포식자의 타깃
강남의 밤은 낮보다 붉고 축축하다. 테헤란로의 빌딩 숲이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처럼 침묵할 때, 청담동과 신사동의 지하 세계는 자본주의의 욕망이 뿜어내는 열기로 뒤끓는다. 그 욕망의 최정점, 네온사인이 가장 잔인하게 빛나는 곳에 안아현의 왕국이 있었다.
서른셋. 남들은 대리나 과장 명함을 달고 상사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버텨낼 나이에 아현은 강남에서 가장 잘나가는 대형 라운지 바 ‘벨벳(Velvet)’의 대표이사였다. 자수성가라는 타이틀은 달콤했다. 스물넷에 대구에서 단돈 50만 원을 들고 상경해 강남의 바닥 청소부터 시작했던 그녀였다. 온갖 수모와 밤샘 근무, 취객들의 모욕을 견뎌내며 독하게 모은 돈과 인맥으로 청담동 한복판에 ‘벨벳’을 오픈했을 때, 세상은 그녀를 향해 찬사를 보냈다.
벨벳은 평범한 술집이 아니었다. 최고급 인테리어와 정·재계 인맥을 활용한 철저한 회원제 마케팅이 대성공을 거두며,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자산가들과 연예인들이 줄을 서는 명소가 되었다. 기세를 몰아 그녀가 새로 론칭한 퓨전 주점 프랜차이즈 ‘청담야성’은 순식간에 서울과 수도권 주요 상권에 가맹점 15호점을 돌파했다. 매달 법인 계좌로 수억 원의 현금이 찍히고, 최고급 수입 세단을 몰며 청담동의 최고급 주상복합에 입주할 때만 해도, 아현은 자신이 강남의 밤을 지배하는 영원한 여왕이 된 줄 알았다.
그러나 자만은 치명적인 독이었다. 강남 바닥의 진짜 포식자들은 화려하게 빛나면서도 아직 뿌리가 깊지 않은 젊은 여성 사업가를 가장 좋은 먹잇감으로 점찍고 숨을 죽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거대한 자본의 생태계에서 아현은 그저 겉모습만 화려하게 치장한 연약한 초식동물에 불과했다.
화근은 너무 빠른 확장이었다. 15호점의 성공에 도취해 무리하게 20호점까지 동시 오픈을 준비하며 본사의 현금 흐름이 빡빡해진 타이밍이었다. 바로 그 순간을 귀신같이 노리고 기습적인 고강도 세무 조사가 터졌다.
“국세청 조사4국에서 나왔습니다. 영장 발부되었으니 협조해 주십시오.”
평일 오후, 불시에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검은 수트 차림의 조사관들은 차가웠다. 벨벳의 본사 사무실과 매장의 회계 장부,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순식간에 파란색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 나갔다. 아현은 등받이 의자에 주저앉아 온몸의 피가 발끝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극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장부상 일부 가공거래와 세금 이연 처리가 걸려 있었기에 이번 조사가 단순한 정기 조사가 아님을 직감했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제보를 넣은 것이 분명했다.
악재는 결코 홀로 오지 않는 법이었다. 세무 조사가 시작되었다는 소문은 발 없는 말이 되어 강남 바닥에 순식간에 퍼졌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자금줄이 동결되자마자, 동대문 및 방산시장과 연계된 주류 원단 대금, 그리고 신규 매장 세 곳의 인테리어 잔금 수억 원이 일시에 청구되었다.
“안 대표님, 소문이 흉흉해서 말입니다. 이번 결제는 미룰 수가 없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원자재 대금 결제 안 되면 내일부터 가맹점 물류 공급 전면 중단합니다.”
물류 대행업체 사장의 쌀쌀맞은 통보는 서막에 불과했다. 단 하루만 결제가 밀려도 바닥에 소문이 나고 가맹점주들이 단체 소송을 제기할 유흥·외식업계의 특성상, 아현에게는 인맥을 동원해 숨을 돌릴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아현은 침을 삼키며 평소 자신에게 언제든 힘들 때 연락하라고 하던 벨벳의 VIP 룸을 드나들던 사람들의 번호를 눌렀다.
“아, 안 대표? 내가 지금 중요한 미팅 중이라 나중에 전화할게.” “안 대표, 요새 세무 조사 때문에 시끄럽다며? 아이구, 내가 지금 해외 출장 중이라 손을 쓸 수가 없네. 힘내라고.”
평소 그녀가 주최하는 파티에 와서 “안 대표,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이 오빠한테 얘기해”라며 명함을 건네던 대기업 임원도, 자산운용사 대표도 약속이라도 한 듯 차갑게 전화를 끊거나 비서를 통해 아현을 피했다. 철저히 계산적이고 철면피 같은 자본의 생리였다. 득이 될 때는 꿀벌처럼 몰려들고, 피 냄새가 날 때는 늑대처럼 가장 먼저 등을 돌리는 하이에나들이었다.
결국 아현은 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주거래 은행의 문을 두드렸다. 평소라면 지점장이 직접 나와 영접했을 테지만, 이날 아현이 마주한 것은 여신담당 부지점장의 싸늘한 눈빛이었다. 부지점장은 형식적으로 식은 커피 한 잔을 권한 뒤, 서류 봉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안 대표님, 저희도 참 안타깝습니다만, 지금 법인 계좌는 물론이고 안 대표님의 개인 자산과 부동산까지 국세청 보전압류 여파로 묶여 있는 상태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제1금융권뿐만 아니라 저축은행권에서도 대출 심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본점 여신심사위원회에 특별 승인을 요청한다고 해도 최소 3주는 걸려요.”
“부지점장님, 제가 이 은행에 예치한 금액과 그동안 쌓은 신용이 있잖아요. 딱 며칠만 유예해 주시거나 긴급 자금으로 풀어주실 수는 없나요? 3주 뒤면 제 사업은 이미 공중분해 됩니다!”
“안 대표님.”
부지점장이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목소리를 낮췄다.
“금융은 신용을 먹고 삽니다. 지금 안 대표님의 신용은 ‘위험’ 수준이에요. 규정상 어쩔 수 없습니다. 돌아가 보십시오.”
은행 문을 나서는 아현의 뺨 위로 5월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었지만, 그녀는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를 느꼈다. 터덜터덜 운전석에 앉아 스티어링 휠을 잡은 손이 미치도록 떨렸다. 라디오에서는 경기 침체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의 폐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앵커의 무미건조한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청담동의 화려한 명품거리 빌딩들이 마치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거대한 괴물의 이빨처럼 보였다.
오후 4시가 지나자 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울려댔다. 수화기 너머로 주류 공급업체 담당자의 건조하고 냉정한 목소리가 꽂혔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결제 대금 2억 원이 입금되지 않으면, 바로 부도 처리 절차 들어갑니다, 대표님. 저희 공장과 원단 처에서도 더 이상은 유예 못 해 드린답니다. 소송 준비 서류는 이미 작성 끝났습니다.”
“잠깐만요, 담당자님! 한 번만…”
뚝. 통화가 끊겼다. 손끝이 부르르 떨리다 못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단 몇 시간 만에 아무런 담보도 없이 현금 2억 원을 구하는 것은 누가 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벨벳 사무실의 에어컨은 시원하게 가동되고 있었지만, 아현의 등 뒤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 셔츠를 적셨다. 당장 내일 아침이면 평생을 바쳐 일구어온 ‘벨벳’과 프랜차이즈 사업이 모래성처럼 무너질 위기였다. 청춘을 갈아 넣고, 매일 밤 취객들의 비위를 맞추며 위장약을 달고 살았던 지난날의 고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코너에 몰려 호흡조차 가빠지던 늦은 저녁 9시, 어두컴컴한 사무실 안에서 불타오르듯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액정 화면에 뜬 이름은 ‘마 실장’. 평소 유흥업계 물주들과 여사장들 사이를 오가며 급전을 주선하거나 아가씨들을 소개하던 음지의 브로커였다. 평소라면 급이 낮고 질이 나쁘다며 비서 선에서 커트했을 인물이었지만, 지금의 아현에게는 호랑이 굴에서 만난 밧줄과도 같았다. 아현은 마른침을 크게 한 번 삼키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안 대표, 얼굴색이 말이 아니라는 소문이 여기까지 들리네? 당장 내일까지 큰 돈 나가야 한다며?”
마 실장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과도하게 친근했고, 그래서 더 기괴했다. 수화기 너머로 삼겹살 굽는 소리와 함께 은근한 담배 연기 냄새가 베어 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축축하고 탁한 음성이었다.
“마 실장님… 지금 장난할 기분 아니에요. 당장 내일 오전까지 현금으로 2억이 필요해요. 단기 대환이라도 좋으니까 손쓸 수 있는 곳이 있나요? 이자는 원하는 대로 쳐드릴 테니까, 제발 확실하고 깔끔한 곳으로 연결해 줘요.”
아현의 다급한 목소리에 전화기 너머로 짧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것은 비웃음이 아니었다. 굶주린 사냥감이 덫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올 때, 수풀 뒤에 숨은 포식자가 짓는 특유의 잔인하고 만족스러운 웃음이었다. 마 실장은 짐짓 목소리를 낮추며 보안을 유지하는 척 말을 이어갔다.
“에이, 안 대표. 아현 씨니까 내가 특별히 내 최고급 라인 오픈해 주는 거야. 다른 사람이었으면 명함도 못 내밀어. 담보? 필요 없어. 신용조회? 세무 조사 터진 마당에 그런 걸 뭐 하러 해? 그냥 안 대표 이름 석 자랑 그 잘나가는 청담동 ‘벨벳’, 그리고 프랜차이즈 매장들 간판 보고 당일로 2억 바로 쏴줄 수 있는 큰형님들이 계셔. 이율이 조금 세긴 한데,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야? 당장 내일 부도나서 길바닥에 나앉고 신용불량자 되는 것보단 백번 낫잖아. 안 그래?”
그것이 요즘 유행하는 소위 현재 조폭들의 핵심 자금줄이자, 강남 지하 세계를 장악한 기업형 사채 조직 ‘블랙 캐피탈’이 파놓은 거대한 함정이라는 것을 아현은 알지 못했다. 그들은 과거 영화에서처럼 온몸에 문신을 드러내고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깔끔한 명품 수트를 입고 고급 외제차를 타며, 합법적인 투자 자문 회사나 금융업의 탈을 쓴 채 사경을 헤매는 자영업자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지능형 악마들이었다. 한 번 물리면 뼈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씹어 삼키는 악어떼 같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부도 공포에 눈이 멀어버린 아현의 귀에는 마 실장의 위험한 제안이 더 이상 독배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옥 같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내려온 줄방아, 자신을 구원해 줄 마지막 남은 생명줄처럼 느껴졌다.
‘그래, 우선 2억만 있으면 내일 아침의 불은 끌 수 있어. 세무 조사만 어떻게든 방어하고 다음 달에 프랜차이즈 가맹 정산금이 들어오면, 이자 가산해서 한 달 안에 싹 다 갚아버리면 그만이야. 난 여태껏 더한 위기도 내 능력으로 넘겨왔잖아.’
절망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아전인수 격의 안이한 계산만을 뇌리에 채우는 법이다. 아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결심했다.
“어디로 가면 되죠? 지금 바로 갈 수 있어요.” “오케이, 역시 안 대표 화끈하네. 지금 바로 청담동 대하빌딩 지하 2층으로 와. 형님들이 마침 거기 계시니까. 서류는 내가 대충 준비해 갈 테니 안 대표는 몸만 와서 인감도장만 찍으면 돼. 바로 주실 거야.”
마 실장이 불러주는 주소를 메모지에 받아 적는 아현의 손가락이 미치도록 떨렸다.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각, 불이 꺼진 대표실 안의 대형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화려하고 당당했던 강남 여왕의 모습은 간데없고, 파산과 파멸의 공포에 질려 눈이 뒤집힌 한 명의 나약한 인간만이 서 있었다. 그녀는 금고에서 개인 인감도장과 신분증을 꺼내 가방에 쑤셔 넣었다.
사무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경고음이 울렸다. 사채는 파멸의 지름길이라는 상식이 대가리를 들이밀었지만, 당장 내일 아침 10시에 터질 부도 가위눌림이 그 경고음을 짓밟아버렸다.
벨벳 매장 앞을 지나치는데, 홀에서는 화려한 조명 아래 남녀들이 비싼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화려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아야 했다. 아현은 자신의 수입 세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엔진의 묵직한 굉음이 주차장을 울렸지만, 그녀의 심장 고동 소리보다 크지는 않았다.
스티어링 휠을 잡은 손바닥에 축축하게 땀이 배어 나왔다. 청담동의 거리는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유흥을 즐기려는 차량과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네온사인은 여전히 잔인하도록 아름답고 화려하게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아현은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았다. 차는 순식간에 마 실장이 알려준 목적지를 향해 미끄러져 갔다.
그것이 자신의 평생의 피땀 눈물이 서린 왕국을 통째로 집어삼킬 포식자의 소굴로 향하는 지옥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안아현은 정말 꿈에도 알지 못했다. 마 실장이 알려준 청담동 외곽의 한산한 빌딩, 그 지하 세계의 문이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거대한 아가리를 벌린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공기는 기괴할 정도로 차가웠고, 도시의 소음은 점차 멀어져 갔다. 아현은 브레이크를 밟으며 지하 주차장의 어두운 통로로 차를 밀어 넣었다. 파멸의 톱니바퀴가 거칠게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