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닫혀버린 계좌, 덮쳐온 어둠
강남의 차가운 빌딩 숲 위로 약속된 상환 당일의 태양이 무심하게 떠올랐다.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의 유리창들이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받아 반사될 때, 아현의 집무실 안은 이미 며칠째 계속된 밤샘 작업으로 인해 짓눌린 듯한 피로와 긴장감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약속된 마감 시간은 당일 오후 4시 정각. 아현에게 허락된 시간은 이제 고작 몇 시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난 일주일은 안아현이라는 인간이 가진 정신력과 육체적 한계를 매 순간 시험하는, 그야말로 단 1초도 숨을 쉴 수 없는 지옥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사채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그 순간부터 아현은 잠이라는 사치를 완전히 잊은 채 강남 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우선 그녀는 자신의 본진이자 매일 밤 수천만 원의 현금이 오가는 ‘벨벳’ 라운지 바의 금고를 열어젖혔다. 주말 동안 몰아친 매상 전액을 단 한 장의 지폐도 남김없이 털어냈고, 각 가맹점주들에게 가야 할 퓨전 주점 프랜차이즈 매장들의 유동 자금과 물류 정산 대금까지 영혼까지 탈탈 털어 냈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아현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주식과 채권을 손해를 감수해가며 급매로 처분했고, 평소 안면이 있던 지인들과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존심을 전부 바닥에 내려놓은 채 급전까지 싹싹 긁어모았다.
“안 대표가 왜 그렇게 급전을 구하러 다니냐”는 바닥의 수군거림과 시선이 귓가를 찔렀지만, 당장 닥쳐온 파멸을 막기 위해 아현은 귀를 닫았다. 매일 밤낮으로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확인하며 피를 말리는 사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오후 3시 정각 그녀의 손에는 원금 2억 원과 살인적인 일주일 치 폭리를 합친 총 2억 3천만 원의 생현금이 완벽하게 확보되었다.
“하아…… 살았다. 기어이 해냈어.”
아현은 일주일 동안 제대로 갈아입지 못해 땀과 먼지에 찌든 옷을 입은 채, 사무실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전신을 짓누르던 극심한 편두통과 심장을 조여오던 파산의 공포가 그 묵직한 현금 뭉치 앞에서 마침내 멀어지는 듯했다.
자수성가하여 강남의 여왕으로 버텨온 그녀의 끈질긴 생명력이 이번에도 빛을 발한 것 같았다. 이제 이 준비된 돈을 송금하고, 그 무시무시한 특약 조항이 적힌 계약서 원본을 제 눈앞에서 갈가리 찢어버리기만 한다면, 자신의 목을 죄어오던 이 지독한 음지의 악몽도 완전히 끝이 날 터였다. 지옥의 문턱에서 기어코 제 힘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강렬한 성취감과 해방감에 아현의 가슴이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사채 조직의 총책인 강태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좌번호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상환 처리가 완료되었다는 확인서를 받아내어 이 지긋지긋한 관계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고객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이후에는…….’
수화기 너머로 당연히 들려야 할 익숙한 신호음 대신, 차갑고 기계적인 안내 음성이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곧바로 흘러나왔다. 아현의 매끄러운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중요한 미팅 자리에 들어가 있어서 잠시 전화를 꺼두었거나, 지하 주차장 같은 통신 음영 지역을 운전 중일 것이라 생각하며 아현은 스스로를 위안했다. 일주일 동안 돈을 구하느라 극도로 예민해진 탓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라 여기며, 그녀는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고 정확히 10분 뒤에 다시 강태훈의 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스마트폰 스피커를 통해 돌아오는 결과는 조금 전과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다. 여전히 단 한 번의 신호음도 가지 않은 채 차가운 기계음만이 방 안을 울렸다.
불안의 작은 불씨가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오후 3시 20분, 그리고 3시 40분…… 집무실 벽에 걸린 아날로그시계의 바늘은 야속할 정도로 빠르게 마감 선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지만, 강태훈의 전화기는 켜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고이기 시작한 아현은 극도의 초조함 속에서 일주일 전 자신을 역삼동 소굴로 인도했던 연결책 브로커 마 실장의 번호로 다급하게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마 실장의 번호 역시 약속이라도 한 듯 전원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는 기계음만 반복될 뿐이었다. 강태훈과 마 실장, 두 사람 모두가 동시에 세상에서 증발해 버린 것 같은 기괴한 침묵이었다.
순간, 아현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오한과 함께 소름이 돋아났다.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사무실이었지만 온몸의 뼈마디가 시려올 정도로 급격하게 몸이 식어갔다. 이것은 단순한 통신 장애나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이 날카로운 화살처럼 머릿속을 관통했다.
아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책상 서랍을 열고 일주일 전에 피눈물을 흘리며 찍었던 계약서 원본을 거칠게 꺼냈다. 서류를 쥔 그녀의 손가락 끝이 마구 떨렸다. 다행히 계약서 원본 하단에는 사채 조직이 수납용으로 명시해 둔 법인 명의의 대포통장 계좌번호가 또렷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아현은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하고 즉시 스마트폰을 켜 기업뱅킹 앱을 실행했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숫자를 확인한 아현은 액정 화면 위로 송금액 ‘230,000,000원’을 한 자 한 자 새겨 넣듯 입력했습니다. 이어 법인 OTP 카드의 무작위 비밀번호와 공인인증서 비밀번호까지 인내심을 갖고 완벽하게 누른 뒤, 마지막 관문인 최종 확인 버튼을 손가락이 부서져라 눌렀습니다. 이 버튼만 누르면 지옥 같던 쇠사슬이 풀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화면에 나타난 것은 정상적으로 송금이 완료되었다는 푸른색 알림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액정 중앙에 커다랗게 뜬 시പ്പ런 경고 글씨가 아현의 심장을 그대로 관통해 얼려버렸습니다.
[오류: 존재하지 않거나 거래가 중지(해지)된 계좌입니다.]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내가 너무 긴장해서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했나? 그럴 리가 없잖아.”
아현은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종이 서류에 적힌 숫자와 스마트폰 화면의 숫자를 하나하나 대조했습니다. 눈이 뒤집힐 것 같은 공포 속에서 거친 숨을 헐떡이며, 지워질 듯한 계좌번호를 처음부터 다시 아주 느리게 입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조금 전과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다.
거래 중지 계좌].
그제야 아현은 눈앞이 아뜩해지며 이 모든 상황의 거대한 전말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시스템 오류가 아니었다. 사채 조직이 아현의 송금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상환 마감 시각 직전에 자신들이 지정해 두었던 법인 명의의 대포통장 계좌를 인위적으로 폭파해 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오후 4시 정각.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이 마침내 운명의 상환 마감 선을 냉혹하게 통과하는 순간, 아현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쳐 오르는 듯한 극심한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상환할 돈 2억 3천만 원을 완벽하게 통장에 쥐고도 보낼 곳이 없어 졸지에 약속을 어긴 연체자가 되어버리는, 기괴하고도 정교한 조폭들의 덫에 완벽하게 갖혀버린 것이었다.
강태훈 일당은 처음부터 아현에게 돈을 돌려받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고작 2억 원의 원금이 아니었습니다. 아현이 청춘과 영혼을 갈아 넣어 일구어놓은 수십 억 가치의 대형 라운지 바 ‘벨벳’과 프랜차이즈 전체의 주식 지분, 그리고 경영권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이 그들이 파놓은 덫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전화기는 여전히 먹통이었고, 시간은 아현의 속을 태우며 야속하게 흘러 강남의 화려한 밤이 다시 찾아왔다. 사방이 가라앉은 어두운 사무실 안에서 아현은 텅 빈 의자에 주저앉아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채 미쳐버릴 것만 같았는데, 거리는 낮보다 붉은 네온사인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그녀의 세계는 완벽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시간의 흐름은 공포를 증폭시키는 고문 도구와도 같았고, 사채업자들에게 당했다는 비참함과 억울함이 가슴을 갈갈이 찢어발겼다. 그리고 마침내 밤을 지나 새벽 1시 정각을 알리는 둔탁한 시계 소리가 들리는 듯한 순간이었다.
쿵——!! 콰직!
아현의 개인 집무실을 굳게 닫고 있던 두꺼운 원목 문이 처참한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찢겨 나갔다. 문짝의 파편들이 대리석 바닥을 긁으며 사방으로 튀었고, 부서진 문틈 사이로 지독하고 짙은 담배 연기가 밀려오며 강태훈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의 서글서글했던 비즈니스맨의 가면은 이제 흔적도 없었다.
태훈의 뒤에는 온몸에 문신을 도배하고 살기등등한 눈빛을 한 거구의 현역 조직폭력배 3명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버티고 섰고, 강태훈의 손에는 일주일 전 아현이 피눈물을 흘리며 도장을 찍었던 그 계약서와 함께, 이미 법적 서식이 깨끗하게 활자로 인쇄된 새로운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주식 전부 양수도 계약서’와 ‘대표이사 사임서’였다.
“안 대표님, 일주일 동안 조용하시대? 우리가 약정한 상환 시각에서 정확히 9시간 지났습니다. 계약서에 명시된 특약 조항 발동합니다.”
강태훈이 입꼬리를 비열하게 올리며 아현의 책상 위에 무거운 서류 뭉치를 툭 던졌습니다. 종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방 안을 울렸다.
“무슨 소리에요! 내가 돈을 안 갚으려고 한 게 아니잖아요! 당신들이 전화를 전부 끄고 송금 계좌까지 고의로 막았잖아! 여기 내가 일주일 동안 피땀 흘려 모은 2억 3천만 원 그대로 통장에 있고, 현금도 준비되어 있어요! 당장 이거 다 가져가라고요!”
아현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 가방을 가리키며 핏대를 세우고 악을 쓰며, 목이 멜 정도로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강태훈은 그녀의 처절한 외침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던져놓은 서류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계좌가 막히든 전화가 꺼지든, 그건 안 대표 사정이라 내 알 바 아니고. 우린 법대로 계약서에 적힌 시간과 결과만 봅니다. 약속된 시간이 단 1분이라도 지났으니 이제 이 매장, 법인, 그리고 지분 전체는 우리 형님들 겁니다. 더 추해지기 전에 곱게 도장 찍고 여기서 나가시죠. 아니면 다른 재미없는 꼴 좀 보실랍니까?”
태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뒤에 서 있던 조폭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현을 사방에서 포위했고, 그중 한 명이 위협적으로 책상을 쾅 내려쳤다. 덫은 완벽하게 쳐졌고, 아현은 고스란히 그 안에 갇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방 안의 조명마저 가라앉은 상황에서 이제 아현에게는 도망칠 곳도,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으며, 완벽한 지옥의 입구에서, 강태훈은 칼날 같은 선택지를 그녀의 목에 잔인하게 들이밀며 마지막 도장을 종용하고 있었다. 이제 아현은 태훈의 요구에 응해야만 했다.
“어서 어서~ 도장을 찍고, 우리 바람 좀 쐬러갑시다. 안 대표님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당신의 선택은? (1차 분기점)
사채 조직의 숨 막히는 압박과 협박 속에서, 여사장 아현의 운명을 결정할 순간입니다. 어떤 경로를 선택하시겠습니까?
👉 [선택 1] 사채업자의 요구를 들어주고 조용히 차에 탑승한다.
👉 [선택 2] 요구를 거부하고, 현재 교제 중인 남자친구에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한다. (무료)
(※ 선택하신 분기점의 다음 화를 결제하시면, 아현의 잔혹한 운명의 대단원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