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심장에 꽂은 칼날
달그락—.
얼음 버킷에서 집어 올린 투명한 각얼음이 크리스탈 언더락 잔 바닥에 부딪히며 서늘한 마찰음을 냈다. 탕은 여전히 소파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시가 연기를 뿜어내며 등 뒤로 호찌민의 붉은 야경을 거만하게 거느리고 있었다.
“그래, 당신이 따라주는 술이라면 그 안에 독약이 들었어도 기꺼이 마셔주지.”
탕이 비열하게 웃으며 툭 던진 농담은 흐엉의 심장 가장 깊은 곳을 서늘하게 관통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터질 듯한 폭발적인 진동이 일었지만, 흐엉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이미 민의 부러진 손가락과 핏자국으로 얼룩진 건축 사무실을 마주한 순간부터 그녀의 내면은 단단한 화강암처럼 굳어 있었다. 30억 동의 빚을 빌미로 소중한 이들의 목숨을 인질 삼아 자신을 사방으로 굴려대던 악마. 여기서 또다시 고개를 숙인다면 평생 그의 새장에 갇혀 피눈물을 흘리는 가축이 될 뿐이었다.
흐엉은 바 카운터의 높은 대리석 벽 뒤로 두 손을 숨겼다. 정장 소매 안쪽에서 미끄러져 나온 작은 갈색 유리병의 마개를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툭 밀어 열었다. 무색무취의 투명한 액체가 크리스탈 잔 바닥으로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치사량을 한참 넘기는 양이었다. 그 위로 황금빛 위스키가 찰랑거리며 쏟아졌고, 얼음이 녹아내리는 미세한 기포 속으로 독약은 흔적도 없이 녹아들었다.
흐엉은 잔을 들고 천천히 소파로 걸어갔다. 완벽하게 차려입은 고급 아오자이 자락 사이로 하이힐 소리가 규칙적으로 거실을 울렸다. 그녀는 탕의 앞에 무릎을 꿇듯 다가가 잔을 내밀었다. 눈동자에는 그 어떤 흔들림도 없는, 오직 차가운 복종의 빛만 가득했다.
“회장님, 오늘 투자청 자금 500억 동 유치를 자축하는 술입니다. 부디 단숨에 들이켜 주시죠.”
탕은 흐엉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비열하게 웃었다. 그는 흐엉이 병실에 누운 연인의 목숨 때문에 완전히 영혼까지 거세당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사냥감이 맹수에게 완벽하게 길들여졌다고 믿는 포식자의 치명적인 자만이었다.
“좋지. 호찌민을 통째로 집어삼킬 자금줄을 쥐었으니, 이 정도 축배는 들어야지.”
탕은 흐엉이 내민 잔을 낚아채듯 받아들고는, 그대로 고개를 꺾어 위스키를 단숨에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꿀컥, 꿀컥. 탕의 두꺼운 목줄기가 크게 두 번 움직였다. 잔이 비워지는 그 짧은 몇 초 동안, 흐엉은 혀끝이 바짝 타들어 가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거실의 가구들을 조용히 훑었다.
탁. 비어버린 크리스탈 잔이 대리석 테이블 위로 거칠게 내려놓아졌다. 탕은 입술을 훔치며 손가락으로 시가를 다시 집어 들었다.
“술 맛이 오늘따라 유난히 서늘하구만. 자, 흐엉. 이제 계약도 끝났으니 내 발밑으로—”
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눈동자가 기괴하게 확장되었다. 시가를 쥐고 있던 그의 오른손이 허공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어… 컥…?”
탕의 입술 사이로 정체 모를 신음이 새어 나왔다. 목을 움켜쥔 탕의 손가락이 사정없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무색무취의 신경 마비 독극물은 그의 위벽을 타고 내려가자마자 심장 근육과 기도 마비를 동시에 일으키며 탕의 온몸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너… 네 년이… 감히…….”
탕은 핏발이 터져 붉게 물든 눈으로 흐엉을 노려보며 소파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사지가 마비된 그의 거구는 거실 대리석 바닥으로 볼품없이 고꾸라졌다. 쿵! 하는 육중한 파열음과 함께 탕이 바닥을 뒹굴었다. 입가에서 허연 거품과 핏물이 뒤섞여 흘러내렸고, 그의 손가락은 부러질 듯 바닥을 긁어댔다.
흐엉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바닥에서 한 마리 곤충처럼 뒤틀리며 죽어가는 탕을 고요히 내려다보았다. 눈물도, 공포도 없었다. 오직 지독한 혐오감만이 그녀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민이의 손가락을 부러뜨렸을 때, 당신도 똑같이 고통스럽게 죽어갈 거라고 맹세했어. 정확히 계산했어, 탕 회장. 당신이 살아있는 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으니까.”
흐엉은 탕이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경련을 일으키는 동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탕의 개인 금고는 어젯밤 비밀 접대 도중 그가 취했을 때 봐두었던 비밀번호 그대로였다. 서두르지 않는 손길로 금고를 열자, 그 안에는 오늘 오후 유치한 500억 동의 해외 유령 펀드 보안 카드와 조직의 비밀 장부, 그리고 자신을 협박할 때 썼던 부모님의 가짜 채권 서류들이 가득 차 있었다.
흐엉은 가방 안에 서류와 보안 카드를 통째로 쓸어 담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탕의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미리 대기시켜 놓았던 해외 보안 메신저를 통해 호찌민 중앙 공안부 내사과 직통 라인으로 투자청 간부들의 500억 동 뇌물 수수 계약서 원본 파일과 조직의 마약 자금 세탁 장부를 통째로 전송했다.
조직의 두목이 의문의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동시에 대규모 금융 범죄 장부가 공안 수뇌부에 떨어지면 탕의 부하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무너질 것이 뻔했다. 병실에 누워있는 민을 건드릴 여력 따위는 남지 않을 터였다.
바닥을 보았다. 탕의 뒤틀린 손가락이 마침내 완전히 멈추어 있었다. 거대한 포식자의 허무한 종말이었다.
새벽 3시. 호찌민 탄손누트 국제공항의 VIP 터미널.
흐엉은 카키색 트렌치코트 깃을 바짝 올린 채 선글라스를 쓰고 캄보디아 프놈펜행 야간 전용기 탑승구 앞에 섰다. 그녀의 손에 들린 가방에는 탕의 금고에서 빼낸 수십억 동의 생현금과 해외 유령 계좌의 마스터 키가 들어있었다.
공안에 넘긴 제보 파일에는 탕과 정계 간부들의 죄상뿐만 아니라, 자산관리사 ‘흐엉’이라는 이름으로 집행된 금융 사기 계약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탕을 죽이고 조직을 파멸시켰지만, 그녀 역시 더 이상 베트남 땅에서 고결한 금융 엘리트 여왕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 날이 밝으면 그녀는 500억 동 대형 금융 사기극의 주범이자, 유력 용의자로 수배령이 떨어질 터였다.
“탑승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흐엉 고객님.”
승무원의 안내에 흐엉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비행기 트랩에 오르기 전, 그녀는 멀리 네온사인이 꺼져가는 호찌민 1군의 스카이라인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부모님의 안위는 확보했고, 민을 짓밟았던 탕의 조직은 공안의 칼날에 갈기갈기 찢기겠지만, 그녀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화려한 커리어와 상류층의 삶은 이 호찌민의 밤하늘 속으로 영원히 증발해 버렸다. 이제 그녀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조차 사라진 낯선 이국땅의 지하 세계를 떠돌며, 평생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민의 복수를 완수하고 지옥을 탈출한 백조. 하지만 그 대가로 날개가 꺾인 채 영원한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야 하는 추방자. 비행기의 거대한 엔진음이 새벽의 정적을 찢으며 활주로를 박차고 올랐고, 흐엉은 선글라스 너머로 멀어지는 호찌민의 불빛을 바라보며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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